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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번뇌

소금인형 2006. 1. 17. 11:09
 

  

 

                                     번뇌/이미경


  꿈을 꾼 듯하다. 남자가 가지런히 개어두고 간 목도리와 장갑, 분명 꿈은 아니었다.

입춘이 지났다고는 하나 아직 바람이 차다. 젖은 머리가 마르기도 전에 새벽길로 내몰린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면부지인 남자가 내 마음에 괴로움 한 자락을 내려놓고 간걸 보면 남자는 전생에 나와 어떤 관계 있었던가보다. 마음이 뒤숭숭해서 성서를 펼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일상과는 분리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리려 했을까. 몇 시간 전 비몽사몽 있었던 일이 부끄러워진다. 잔잔한 호수위의 바람 같은 여러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많은 생각들이 겹치면서 크고 작은 파문을 만든다.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다르게 행동해서 지금 같은 괴로움은 남기지 않을 텐데. 이렇게 마음이 무겁고 아픈 것이 모두 남편 탓인 것 같아 슬며시 밉기까지 하다.

 남편은 회식이 있어 조금 늦겠다고 했다. 화면 가득 사건 사고가 넘쳐나는 뉴스를 보다 잠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꾸다 전화 벨소리에 잠을 깼다. 술집에서 만난 사람을 데리고 집으로 온다는 남편의 전화였다. 시계는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은 아주 가끔씩 취중에 낯선 사람을 집으로 데려오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꿀물을 타거나 간단히 술상을 봐서 그들을 대접해 보냈다. 그런데 오늘은 감기 탓인지 귀찮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여니 남편은 승복을 입은 남자와 같이 서 있었다. 뜻밖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요즘엔 떠돌이 중이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남자는 누굴까. 괜히 불안했다. 남자는 아주 정중하게 “미안합니다.” 라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무뚝뚝하게 남자를 맞았다. 이 시간에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온 남편이나 가잔다고 따라온 남자,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편이 내민 술병을 받아 들고서 주방으로 가서 술상을 차렸다. 남자를 빨리 보내기 위해서였다. 남자는 진득이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무례하게도 이곳저곳을 구경한다며 기웃거린다. 내 소중한 것들이 침범당하는 것 같은 생각에 남자가 더 싫어졌다. 남자의 눈길이 가족사진에 머무를 때 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스님은 왜 산에서 내려왔어요.” 내말에 남자가 말했다. “아직 승적에 올리지 않았으니 스님은 아니지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어색해진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렇겠네요. 스님이시라면 이 시간에 여기 계실리가 없겠네요.” 술상을 내가려는 순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힘이 들어서요. 그래서 절을 떠나왔어요. 큰 스님은 나를 훌륭한 승려로 만들려했는데......” 순간적으로 남자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세속의 삶에서도, 출가의 삶에서도 남자는 버거운 삶을 내려놓고 쉴 곳을 찾지 못했단 말인가. 둥지가 없기에 날갯짓을 멈출 수 없는 새의 고단함이 떠올랐다. 흔히들 사는 게 고행이라 하지만 순간순간 짐 부릴 안식처가 있기에 사람들은 다시 힘을 얻어 살아가는 것이리라. 처음으로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삼십대 중반의 파리한 얼굴에 눈빛이 맑았다. 남자의 선한 눈빛을 보자 불안한 마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남자는 절에서 이년동안 있었다했다. 산에서 내려와 도심에 있는 절을 찾았으나 승복을 입은 자신을 믿지 못해 거부하더란다. 며칠을 여기저기 떠돌다 호프집에서 남편을 만나 따라온 것이라 했다. 내 집에 든 손님이지만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재운다는 게 왠지 꺼림칙했다.

남자를 보내자는 나의 제안에 남편은 묵묵부답이었다. 남편 뜻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절집을 드나들었던 남편의 정서를 이해하려고 해도 짜증이 났다. 하는 수 없이 이불과 베개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가지고 거실로 나왔을 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목욕탕 문 앞에 벗어놓은 남자의 옷가지, 남자는 샤워 중이었다. 순간 남자의 예의 없음에 다시 불안해지며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내가 청하지도 않은 손님이고 남편은 취해 있다. 시간은 벌써 네 시가 넘었고 조금 있으면 아이들도 일어날 것이다.

방으로 들어온 남편에게 남자를 보내지 않으면 내가 나가서 자고 오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한참을 말없이 있더니 약간의 돈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잠시 후 손님 가신다는 남편의 목소리에 나는 상냥하게 남자를 배웅했다.

남자만 보내면 모든 게 편해질 줄 알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남자의 선한 눈빛 하나만을 믿을 수는 없었을까. 도시인의 메마른 생활을 한탄 했던 나도 어느새 세상의 통념에 휩쓸려 공범자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돌이킬 수 없이 된 일이 한둘이겠는가마는 지친 새의 아픈 날갯짓이 슬프게 들려왔다.

몇 시간을 뒤척이다 거실로 나왔을 때, 회색빛 낡은 목도리와 장갑이 눈에 띄었다. 남자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이 전부였는데 이것마저 두고 간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일으키는 생각을 불가에서는 넓은 의미로 번뇌라 한다. 돌덩이 같은 무생물이 아니고서야 번뇌 없는 순간은 없다. 그러기에 살아간다는 자체가 구도인 것 같다.

내 기분을 눈치 챈 남편은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의 이야기는 내가 남자를 재워주지 않은 것이 운명인지도 모른단다. 남자가 선택했던 길로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그의 길 위에서 내 몫을 충실히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편이 나를 위로하기위한 말이다. 설령 그것이 진실일지라도 나는 한동안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번뇌는 관성을 유도한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쾌락을 추구하는 번뇌를 계속 일으키다보면 그 생각에 관성이 붙어버려 나중에는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번뇌를 계속 일으키면 그 생각에 붙은 관성이 자연스럽게 구도자의 삶으로 이끈다는 말이다. 실수는 두 번 반복 안할 때, 완전히 극복할 때에는 감미로운 추억도 될 수 있으리라. 남자는 언제쯤 둥지에서 쉴 수 있을까?

세상의 길 위에서 겪을 구도자의 삶을 생각하며 남자의 목도리와 장갑을 종이 가방에 넣는다.

수필사랑 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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