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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모자이크

소금인형 2006. 1. 17. 11:05
    

                           모자이크/ 이미경

                                                      

 반나절 동안 두 아이는 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시간이면 습관적으로 텔레비전 리모컨을 누르거나 냉장고 문을 열어 보는 등 부

산해야 할 텐데 너무 조용하다. 일상과는 다른 풍경이어서 아이들의 방문을 열었다. 그들은 지금 밀린 방학 숙제로 바쁘다. 방안 가득 원고지, 그림도구, 책들로 어질러져 있다. 방학이라며 느긋한 나날을 보내더니 개학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아이들은 미술 숙제를 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모자이크하기에 캐릭터가 제격이라면서 ‘곰돌이 푸’를 밑그림으로 그려 놓고 색종이를 찢어 붙인다. 찢어진 종이가 큼직큼직하다. 그 아이는 활동적인 성격이어서 세밀함을 필요로 하는 일을 싫어한다. 그런데다 시간도 없고 보니 대충해서 검사를 받을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성격을 한번쯤 교정해 주고 싶었던 나는 숙제의 반을 해 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작게 찢어서 꼼꼼하게 해 보라고 했다.

 아이는 원본 그림과 ‘곰돌이 푸’가 그려진 도화지를 나에게 내민다. 풀칠한 노란 색종이를 드라이버의 뾰족한 부분으로 눌러 얼굴부분에 붙였다. 그림을 보지 않고도 작업할 수 있게 옷에는 빨간 색종이를, 나뭇잎에는 초록  색종이를 한 점씩 찍어 놓았다. 모자이크 해 놓은 몇 개의 색종이는 흰 도화지 위로 섬처럼 떠올랐다. 크게 찢어진 노란 종이는 대륙생성을 꿈꾸다가 섬이 된 듯 고독해 보이고, 작게 붙여진 두개의 점은 지각변동으로 섬이 된 듯 쓸쓸해 보인다. 제가끔 외로운 섬 같은 존재가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작은 점들은 동물의 얼굴과 팔 다리가 되고, 붉은 옷이 된다. 아무것도 소통될 수 없어 죽은 듯 보였던 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길을 걷고 있는 그림 속의 ‘푸’에게 입체감을 주며 살아 움직인다. 움직인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 건강한 의미를 주는 일인 것 같다. 지금 찍어 붙이는 한 조각의 점들은 주위의 점들에게 어떤 존재로 새겨질까.

곰돌이가 걸어가는 숲길을 만든다. 초록모자이크가 너무 밋밋한 것 같아 중간 중간에 노란 색종이를 붙인다. 금세 연둣빛을 띄는 화사한 색감이 만들어진다. 물감처럼 섞이지 않고도 다른 색을 내는 모자이크의 또 다른 매력에 나른한 여름 오후가 즐겁다.

제 색깔만을 고집하지 않는 일, 타인을 인식하며 어울릴 줄 아는 너그러움은 삶을 얼마나 산뜻하게 만들던가. 그래서인지 점묘법을 이용해 그렸다는 쇠라의 그림들은 색감이 깔끔하면서도 포근하다. 물감으로 채색된 그림과 달리 구성원 하나하나가 그림조각으로써 긍지를 가지고 어우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소품이지만 작은 점들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되기도 하는 재미에 푹 빠져든다.

 세상살이도 삶의 발자국만큼 완성되는 것이라면 허전하지 않을 것 같다. 적지 않은 삶의 흔적을 가졌음에도 생은 내게 여전히 미완의 그림을 그리며 때때로 제자리걸음만 치게 한다. 항상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음에 서운해 했던 지난날을 나무라듯 모자이크는 맹렬히 자신을 던져 존재를 표현한다. 잘못 붙인 모자이크 하나가 눈에 띈다. 수정을 하자니 보기 싫은 흔적이 남을 것 같고 그대로 두자니 옥에 티다.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은 여백에 있는 듯하다. 점과 점 사이가 너무 붙으면 투박해 보기 싫고 너무 떨어져도 엉성해서 볼품이 없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점들은 보이지 않는 긴장감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삶도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알맞은 거리의 인간관계에 오는 깍듯함, 이성과 감성의 팽팽한 조화,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정서적 감흥이 주는 안정감, 타성에 젖어 사느라 놓쳐버린 이 느낌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푸’가 걷는 길이 들길이 될지 산길이 될지는 아들의 일이다. 그 길을 가고 있는 ‘푸’의 얼굴이 즐겁게 산책하는 표정일지 아니면 힘겨운 산행의 표정일지도 그 아이의 몫인 것 같다. 우주 속의 한 점 모자이크 같은 인간의 삶을 어떤 그림으로 그릴지는 개인의 몫이듯이.

 “얘들아 이것 봐라 엄마가 한 모자이크 예쁘지 않니?” 나는 아이들을 향해 미완성 된 도화지를 세워 들었다.

큰아이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되었다며 활짝 웃는다. 남은 공간에는 흰 구름도 모자이크하고 예쁜 꽃들도 심을 거란다. 바탕색은 푸른색이 좋을 것 같다며 푸른 색종이를 찾느라 야단이다.

 세상의 모든 색은 모자이크처럼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나의 삶도 고운 빛깔로 충실한 무늬를 짜다보면 언젠가는 소외된 개별자가 아니라 충만한 단독자로 빛을 내며 조화로울 것이다.

(2006년 수필세계 등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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