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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뜨락의 괭이밥/이미경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
추위에 약한 화초 몇 포기가 죽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미리 집안으로 들여다 놓지 않은 탓이었다. 오랜 세월 돌보며 정을 들였던 터라 바로 뽑아내지 못하고 몇 달을 그대로 두었다.
창백했던 겨울햇살이 노랗게 여물어가는 봄이었다. 겨울을 잘 견뎌낸 화초들은 제 잎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반들반들 윤을 내고 있었다. 그 초록 사이에 겨울에 죽은 화분이 눈에 띄었다. 내 무심함을 탓하며 죽은 화초를 뽑다가 유년의 뜰에서 보았던 풀 하나와 마주쳤다. 빨간 운동화가 희부연 흙먼지로 얼룩지고 서산으로 해가 기울 때쯤 친구가 넌지시 뜯어주던 연한 풀잎은 색다른 간식거리였다. 잎에서 풍기던 상큼한 풋내와 신맛이 기억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났다. 풀 향처럼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과 얼어 죽은 화초 곁에서 살아남은 것이 기특해서 그 풀을 빈 화분에 대강 심어 모퉁이에 던져 놓았다. 폭죽처럼 터지는 화사한 봄꽃과 이런저런 일상으로 모퉁이의 풀은 내 기억에서 잠시 잊혀졌다.
봄비의 여운이 내 눈길을 창밖으로 향하게 하던 날 갑자기 베란다 모퉁이가 환해졌다. 어머나! 보잘것없던 화분에 왕성하게 번식시킨 연두 잎사귀와 앙증맞은 노란 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꽃이 피기까지 살가운 눈길 한번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 꽃을 햇빛도 오래 받고 거실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로 옮겨놓았다. 괭이밥이란 예쁜 이름도 찾아주며 내 사랑을 듬뿍 주었다.
햇살만이 속절없이 타들어가는 여름이 되었다. 모든 것에는 영원함이 없듯 작고 귀여운 꽃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잎들만이 뒤퉁스레 피어 있었다. 그 남루함이 보기 싫어 얼른 뽑아내고 예쁜 선인장 하나를 심었다. 낯선 환경에 멀뚱거리며 창만 바라보던 선인장이 긴 목을 빼고 여기저기를 둘러볼 때쯤이었다. 풀잎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엔 싹 틔우기가 미안한 듯 구석에 실낱같은 한 포기를 피우더니 야금야금 화분 전체로 잠식해 들어왔다. 행여 선인장에게 피해나 주지 않을까하여 뽑아내길 여러 번 하였다. 내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괭이밥은 더부살이의 고달픔을 하소연하기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줄기를 내고 잎을 피웠다.
토실해 지는 선인장 모양이 이제는 튼튼한 뿌리를 내린 것 같아 두 화초의 동거를 허락하기로 했다. 괭이밥의 수수한 성격 때문인지 선인장의 넓은 마음 탓인지 둘은 서로를 인정하며 잘 어우러져 갔다. 주객이 전도될 정도로 괭이밥은 노랗게 꽃을 피웠다. 제 터전을 떠나와 아쉬움과 부족함으로 피운 꽃들이건만 욕망으로 웃자란 꽃은 보이지 않았다.
신산한 삶일지라도 살부비며, 보듬으며, 능청스레 껴안고 가다보며 포근해지는 게 인생이다. 사람 냄새 폴폴 풍기며 함께 뒹구는 것이야말로 생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더불어 사는 것은 아름답다. 내가 다른 사람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나의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서로 다름을 돋보이게 돕는 것이다.
지금도 베란다에는 많은 화초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자라고 있다. 화려한 색으로 눈길을 끄는 것도 있고 한결 같은 푸름을 자랑하는 것도 있다. 화분이 특이하거나 조금 값나가는 식물도 있다 하지만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괭이밥과 선인장처럼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없다. 괭이밥을 배경으로 선인장이 뭉긋이 앉아 있고 선인장을 배경으로 괭이밥이 물결을 이룬다. 나직이 피어 서로 껴안은 모습이 평화롭다. 그저 존재로서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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