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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풍뎅이1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장수풍뎅이1

소금인형 2006. 1. 17. 10:53
 

                             장수풍뎅이/이미경


 누군가 말했다.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한다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 꽂히는 베란다에 죽어있는 너는 이제 자유로워졌을까. 울창한 참나무 숲을 가슴에 들여다 놓고 날마다 비상을 꿈꾸었을 테지. 날갯짓을 할 적마다 유리 상자에 부딪쳐 어쩔 줄 몰라 하던 너의 모습이 생생하다. 내동댕이쳐진 몸을 추스르던 너의 지난날이 멍자국처럼 단단히 응어리져 나를 바라보고 있구나. 몇 번 놓아 줄까도 생각했지만 애완용 곤충으로 태어나고 길러진 터라 사육통이 더 안전 할 것 같았다. 입김이라도 불어 너를 날아오르게 하고 싶지만 동강난 주검 앞에서 나는 머뭇거린다.

 너의 선조는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살아온 나무들 사이를 오가며 평화롭게 살았을 게다. 숲의 고요가 무너지며 너의 종족이 사람 손에 붙잡혔을 그때부터 너의 운명도 애완용 곤충으로 바뀌었다.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존재는 얼마만큼 운명적인 것일까. 국가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살고자 한다고 해서 그대로 살아지지도 않는 존재를 너는 견디면서 살기를 바랐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어둡고 축축한 곳이 익숙해져서 너에게 편안한 자리가 되었듯이 참고 살다보면 살만한 게 세상일이다.

 네가 오던 날은 나무의 그림자가 유난히도 긴 날이었다. 노을을 등지고 들어선 내 아이의 손에 발효 톱밥이 든 플라스틱 병이 있었다. 조그마한 젤리 한 통이 놓여 있는 톱밥 속에 장수풍뎅이인 네가 있다했다. 나는 너의 존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뒤치다꺼리는 내 몫일 게 뻔했고 무엇보다도 내 집에서 생명이 죽어 나간다는다는 게 싫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너는 훨씬 큰 몸집을 가졌더구나. 머리에 뿔돌기가 있는 투구를 쓴 너의 모습은 듬직해 보였다. 흑갈색의 너의 날개에는 고향집 볕 내리는 고운 마루에서 보았던 윤기가 흐르더구나. 나는 그 윤기가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유리 상자로 너를 옮기던 날, 너도 기분이 좋은지 넣어준 나무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매일같이 톱밥을 펴주고 먹이를 갖다 주자 너는 안주하기 시작했다. 사육통의 뚜껑을 열어 놓아도 날아가지 않았다. 유전자에 새겨있을 본능을 포기해버린 네가 측은해 보여 나는 암컷 풍뎅이 한 마리를 넣어주었다. 삶의 의욕이 생기는지 너는 가끔씩 날개를 퍼덕여보고 암컷의 앞에서 힘자랑을 하기도 했지. 하루는 먹이를 먹는 암컷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너를 보았다. 젤리에 머리가 처박혀 괴로워하는 암컷이 불쌍해 보여 너를 거칠게 밀어내었다. 충격을 받았는지 너는 한참 후에야 톱밥 속으로 들어가더구나. 서로 편해졌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는 사이 너를 내 방식대로 길들이고 있었던 게지. 사랑이란 꼬리표를 붙이면서 말이다. 그것은 나쁘거나 틀린 것이 아니고 네가 살아가는 다른 방식이었을 텐데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혼돈에도 나름대로 방식과 리듬, 질서, 원칙이 있는데 사람들은 가끔 그걸 그냥 놔두지 못하나보다.

너희 둘은 곧 사이가 좋아지더구나. 너희들이 궁금해 톱밥 속을 파보면 둘이 나란히 잠도 자고 있더구나. 먹이도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그즈음 너의 몸이 둔해지기 시작했지. 모든 것이 귀찮은 듯 느릿느릿 기어 나와 놀이나무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너의 식탐에 문제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너에게 먹이를 조금씩 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잣대로만 재단하고 가위질 하느라 너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너의 수명은 성체가 된 후로부터 삼사 개월이었던 것이다. 짝짓기를 하게 되면 너의 수명은 거의 다했다는구나. 편견을 버렸더라면 야행성인 네가 해바라기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짐을 이상하게 생각 했을 텐데.  톱밥 속을 파고 들어갈 기력마저 없던 마지막 행동임을 알아냈더라면 먹이를 줄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외출에서 막 돌아와서야 너의 죽음을 알았다. 먹이를 주던 몇 시간 전 까지 멀쩡했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너의 주검을 본다. 다리 하나가 잘려있고 몸이 두 동강난 채 미라처럼 말라있구나. 움직임이 없는 네 곁에 암컷 풍뎅이가 오랫동안 입을 대고 있었다는 내 아이의 말을 실마리로 너의 죽음을 헤아려본다.

 생명을 다한 너는 햇빛을 이불삼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산란을 위해 단백질이 필요했던 암컷은 너의 체액을 필요로 했다. 잘려지는 몸을 느끼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니. 혹 암컷을 괴롭히던 날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연한 젤리만을 먹이는 동안 너희의 입에도 날카로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원래 너희의 터전은 울창한 참나무 숲이었다. 천둥처럼 높이 뻗은 나무껍질을 뚫고서 그 수액을 마시며 살던 종족이었던 것을 깜박 잊었구나. 너희를 유리병에 가두고 연한 먹이를 주었어도 몸이 기억해내는 본성이란 게 있구나. 숨겨지지도 않고, 기억보다도 앞서는 본성이란 게 참 섬뜩하게 느껴진다.

너의 모습에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가장의 자화상을 본다. 꿈은 있었지만 접어버리고,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책임으로 지친 삶의 모습들이 네 날개의 곱던 빛을 흐려놓았구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었던 날들 위로 힘찬 날개짓을 해보렴. 낮에서 밤이 바뀌는 것처럼 죽음도 하나의 변화일 뿐이란다.

        바람이 부는구나. 멋진 뿔돌기를 앞세우고 씩씩하게 날아오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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