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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울타리

소금인형 2006. 1. 17. 11:10
 

 

                                        울타리

                                                             이미경


  봄부터 내 눈길을 끈 것은 사각 울타리였다. 누군가 아파트 꽃밭 한 쪽 모퉁이에 단단한 나무를 직사각형으로 박고 눈에 잘 띄는 붉은색 나일론 끈으로 둘러 작은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야무지게 갈무리한 것이 눈에 거슬렸으나 어떤 귀한 것을 심어 놓은 것만 같아서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걸음을 멈추곤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그 꽃밭에서 초록 싹이 잎을 넓게 벌렸다. 그런데 그것은 흔하디흔한 봉선화였다. 평범한 꽃에게 저렇게 견고한 울타리라니!

 꽃씨를 심은 이는 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손이라도 탈까 높게 만든 것 이지만 다른 식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만하게 보일듯하다. 울타리란 삶에 있어 최소한의 방어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세상살이에도 울타리가 필요한 법이라고 버릇처럼 말했다. 젊은 시절 피아노를 전공한 그녀는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던 참한 규수였다. 좋은 집안과 학벌, 괜찮은 외모에다 전문직인 그녀에게 많은 혼처가 들어왔음은 당연한 일이였다. 남편감을 고르는 조건도 나름대로 까다로웠던 탓에 혼기를 넘긴 그녀는 독신의 길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단다. 혼자서 살면서 남게 될 여력은 소외된 이들과 같이 하는 삶도 보람 있을 것 같았다. 독신동아리를 찾아 그들과 친분을 맺고 필요한 정보 교환을 했다. 처음 몇 년간 즐거운 나날이었던 그녀는 차츰 회의가 오기 시작했다. 고학력 전문직인 모임의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기 자신을 치장하고 과시하며 남을 이해하는 폭이 좁아지는 특성을 나타내더란다. 그때쯤 그녀는 작은 아파트를 얻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사회적 무서운 편견과 남편과 자식이라는 존재가 때로는 삶의 울타리가 되는 것을.

 편견의 벽을 넘지 못한 그녀는 마흔이 훨씬 넘어 결혼을 했고 그녀 말대로 신분 하락도 했다. 지금 오십 후반이 된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다. 자식 없는 상처와 덜 가진 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기라도 하듯 그녀는 자신만의 견고한 울타리를 쌓았다. 사납게 사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했던 것이다. 고단한 삶을 사는 동안 그녀의 장점들은 상처로 변하였다. 어느 날 그녀는 대학만 나오지 않았어도 지금보다 오히려 더 잘 살고 있을 것 같다고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시절 희고 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쳤을 손은 세월의 두께로 거칠고 투박해졌다. 생계수단이었던 학원에서도 그녀의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울타리의 키가 자라 담으로 변하는 동안 그녀 손이 무디어진 것을 알아 챈 수강생들이 다른 학원으로 떠나 버렸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나이임에도 나는 사는 일에 여전히 서툴다. 자기를 잘 들어내 표현하지 못 하는 성격 탓에 상대의 말을 그 자리에서 맞받아치거나 따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때 이렇게 말하는 건데 하며 뒷북을 친다. 그 말은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상흔으로 남는다. 의도하지 않게 타인으로 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것이 세상살이지만 그 골이 깊을 때면 나를 보호할 무엇의 필요성을 느낀다. 경계하는 듯 보이는 담은 단절과 외로움을 수반할 것 같고 서로 소통 될 수 있는 울타리 정도면 좋겠다. 삶의 중심이 시간과 속도로 바뀌면서 상대에 대한 배려는 작아지고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이가 많아졌다.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얽혀 사는 복잡한 사회에서 삶의 울타리는 오히려 산뜻한 인간관계를 만든다. 함께 어울려 있으되 너와 나를 인식하는 선이라고 할까. 울타리의 높이를 잘 조절해 준다면 적당한 거리에서 오는 깍듯함으로 삶에 윤기를 더할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봉숭아 꽃밭 울타리의 높이가 마음에 걸린다. 울타리도 높이에 따라서는 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껏 푸르름을 뽐내는 나무와 겸손하게 피는 들꽃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붉은 끈이 조화롭지 못하고 탐스럽게 붉은 꽃들이 필 때면 흉물스러울 것 같다.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수단일지라도 주위와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없다면 그건 소외와 단절이다. 산다는 것은 어울림의 미학이다. 높고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평온한 삶을 산다 한들 무슨 존재의 의미가 있겠는가. 사는 게 팍팍할수록 서로간의 정이 있어야 견딜힘도 생긴다. 울타리란 나를 보이게도 하고 타인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는 정겨운 풍경이 아니던가. 봉숭아 에게도 어울리는 울타리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높아서 갑갑하던 울타리는 치워지고 작은 푯말이 나지막하게 꽂혔다.

 ‘예쁜 꽃이죠. 따가지는 마세요.’ (2005. 프런티어 문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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