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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눈물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눈물

소금인형 2006. 2. 14. 17:27
 

        

 

                  눈물/이미경


사위는 붉은 해가 노을을 엷게 깔고 있는 시간, 초인종을 누른다. 긴 울림만이 되돌아오는걸 보니 아이들은 학원에 가고 남편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나보다. 외투를 벗어놓고 주방으로 향한다. 데운 국과 밥 한 공기, 몇 가지의 반찬을 꺼내 놓고 수저를 들 때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마음의 현을 건드린 눈물은 가슴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울림이 되어 돌아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은 언제나 비어 있었어. 고즈넉한 저녁햇살만이 마당 가득했지. 물론 부모님이 과수원이나 밭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은 알지만 난 그 쓸쓸함이 정말 싫었어.”

“집안에 행사가 있어 어머니가 집에 계시 날이면 동구 밖에서 부터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곤 했지. 그러니까 내말은......”

남편은 항상 내가 집에 있기를 원했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왔을 때는 꼭 현관문을 열어주며 맞이할 것을 당부했다. 옆집에서 차를 마시며 놀더라도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먼저 집에 와 있으란다. 잠시와 아이들 궁둥이라도 토닥여주고 간식을 차려 준 다음 다시 차를 마시러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동안 습관처럼 충실하게 살아왔고 이제 아이들에게서 조금 편해지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남자들의 마음보가 사랑스럽던 아내도 살다보면 하루라도 떨어질 수 없는 기호품내지는 집안에 없어서는 안 될 가구 같이 여겨진다더니 남편도 그런 걸까?

“날마다 혼자서 문 열고 들어오는 맞벌이 부부아이들도 있어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어요.”

“당신은 맞벌이가 아니잖아.”

우리부부는 가끔씩 이런 일로 티격태격하다가 신경전으로 이어지곤 했다.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을 아이들은 불안해했고 나도 지쳐 슬며시 꼬리를 내리며 “내가 참자”하는 그런 일상은 반복 되었다.

 며칠 전부터 지인의 부탁으로 한자검정 원서를 접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과 내가 번 돈으로 무언가를 할 때의 기쁨을 생각하며 남편을 설득해서 얻은 자리이다. 하루하루 생기를 더해 즐겁게 일하고 있는 터지만 결혼 이후 집안 살림만 해온 나에게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조금 무리인가 보다. 사흘이 지난 오늘 피곤에 지쳐 집으로 돌아왔고 빈집이 주는 공허함이 시장기를 불렀다. 그런데 밥 한 술도 뜨기 전에 고여 있던 촛농처럼 흐르는 눈물이라니. 이 낯선 당혹감이 오래된 남편의 기억창고를 들여다보게 한다.

돌담이 나지막한 학교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있는 소년이 있다. 친구의 딱지를 모두 딴 소년은 부모님과 형제에게 자랑할 일로 즐거워한다. 그런데 공부시간에 딱지를 접던 친구 때문에 지금껏 따서 모은 딱지를 선생님께 빼앗긴 것이다. 그 일로 친구랑 다투고 몸과 마음이 지쳐 돌아온 집 마당에는 햇빛만이 두텁게 까려있다. 생뚱맞게 누렁이를 불러 보지만 누렁이도 이 쓸쓸함이 싫었는지 집에 없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위로의 말이 당장 필요했던 어린나이의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해넘이 까지 기다렸을까. 철부지부터 새겨졌을 남편의 외로움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언제가 본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가 떠오른다.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가 빛을 등진 채 노인의 품에 안겨있는 그림이었다. 사내를 끌어안은 노인의 이마와 흰 수염이 햇살에 눈부신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하루의 뜨락에서 지쳐 돌아온 나의 본능도 그림 속의 햇살 같은 안식을 원하고 있다.

이제야 남편의 마음을 눈물 한 방울로 깨닫는다.

 내가 가정 안에 항상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를 구속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제 몫의 나이살이에서 지쳐 돌아온 자식들에게 어린 시절 새겨진 그 쓸쓸한 아픔을 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따뜻한 본능이었다.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항상 멀리 돌아와서야 타인의 깊이를 헤아리는 것은 내 삶의 연륜이 짧은 탓만은 아닐거다.

 내가 알고 믿고 적응해온 공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은 마음으로 풀어내기까지 얼마만큼의  눈물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수필사랑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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