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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기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균형잡기

소금인형 2006. 3. 4. 22:22
  

균형잡기/이미경

 

                                              

 그녀의 속눈썹이 웃자란 식물처럼 가늘게 엉켜져 파르르 떨리고 있다. 아마도 우리들의 방문이 당황스러운 듯하다. 불편한 마음의 균형을 잡기위한 것인지 그녀는 입술을 잘근 잘근 씹고 있다. 붉어진 입술이 부어 보일 때 쯤 그녀는 아이들이 버거웠다는 말만 되뇌었다.

 친구의 전화를 받은 건 점심 무렵이었다. 전화선을 타고 온 친구의 목소리는 흥분되어있었다. 공부방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 친구는 아이들을 공부방에 보내자는 말을 했다. 고등학교 이학년부터는 수학1 수학2를 동시에 수업하니 예습을 해놓지 않으면 따라 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는 평소에 야간 학습, 심야자습으로 밤 열두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므로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학원 보낼 짬이 없던 터였다. 나는 흔쾌히 친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공부방 선생님은 처음 두 주 정도는 착실하게 수업을 했다. 셋째 주에는 집안에 일이 있다며 다음 주에 보충을 해주겠다했다. 다음 주가 되자 또 수업이 연기되었다. 나는 혹 선생님이 편찮은가하며 그냥 넘어갔다 그 다음 주에도 이유 없이 수업이 연기된다는 문자가 아이의 휴대전화로 왔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선생님의 다른 방도가 있겠지 싶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친구의 말에 의하면 선생님은 다른 동네에 학원을 새로 차렸는데 그곳이 성업 중이라는 거였다. 그 곳에 신경을 쓰느라 아이들의 수업을 무한정 연기시켰으며 아무래도 아이들 스스로 그만 두기를 기다린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조금 전에 받은 선생님의 전화라 했다. 오늘 수업이 마지막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이유를 묻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이런 법은 없다며 선생님에게 따지고 피해보상이라도 받아야하겠다며 공부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였다. 선생님만 믿고 있던 아이는 황금 같은 시간의 절반이상을 놓쳤으며 무엇보다도 진도에 맞춰 새로 들어갈 학원이 당장은 없는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이런 식의 일처리는 이해 할 수 없었다. 몇 군데 전화를 걸어 알아보았다. 선생님이 학원을 차려 성업 중인 것은 사실이었다.   

 친구는 흥분이 가라 안지 않은 듯 그만 둘 거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그녀를 다그쳤다. 한 동안 말이 없던 그녀는 아이들이 버거웠다는 말을 겨우 한다. 다 자기의 잘못이라며 잘근 잘근 씹는 그녀의 입술이 곧 터질 것 같다.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불량했나요? 아님 과제물을 잘 해오지 않던가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아니라고 어느 그룹보다도 우수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가늘고 흰 목덜미가 슬퍼 보였다.

“아이를 키우며 몇 분의 선생님을 만났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네요. 사람의 일이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럴 땐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음 다른 선생님을 소개해주는 선생님은 계셨지만……. 물론 영리가 목적이겠지만 이건 다르잖아요. 적어도 교육이라는 사명감이 있는데.”

한 동안 말이 없이 머뭇거리던 그녀는 뜻밖의 말을 했다. 아이들이 그녀를 왕따 시켰다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에게 그녀는 아이들의 수업시간이 너무 조용했다고 했다. 시키는 것은 완벽하게 잘하는데 틀린 문제가 나와도 묻지 않고 그녀가 풀이 해줄 때가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팀 아이가 와서 그러더란다. 선생님 그 반에서는 선생님 혼자 수업한다면서요.

 그 조용함이 두 아이의 균형임을 아직 알지 못하는 스물여섯의 그녀를 바라본다. 안쓰럽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있을 나이의 그녀, 누군가의 귀한 딸이기도 할 그녀가 엄마의 강압에 보이기 싫은 물건을 억지로 꺼내 보인 어린애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혼자만의 오해로 상처 받아 아파하는 그녀는 여전히 아랫입술을 잘근거린다.

그녀 안에서는 시간의 법칙을 벗어나 자라고 있는 마음의 아기가 무작정 도망치고 싶어 한다. 해결하지 않은 아픔은 결코 지나간 시간이 될 수 없어 조그만 자극에도 생채기를 남긴다. 그 생채기는 오래도록 현재의 시간이 되어 낙타의 혹처럼 등에 붙어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그녀의 오해를 풀어주어야 한다.

두 아이의 조용함이 불안한 그녀는 다른 팀 수업에 들어가서 우리아이 반은 말이 너무 없다는 말을 했다. 그 반에는 내 아이와 친한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아이의 친구가 너희들은 왜 그렇게 조용하냐는 물음에 아직 친하지 않아서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장난끼가 발동한 녀석이 그녀에게 그렇게 전한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모든 게 서툴러서 그랬다 이해하시고 다시 기회를 달라는 말을 한다.

그녀의 불성실함을 이유로 거절하라고 친구가  사인을 보낸다. 나는 친구를 외면하며 그녀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안에 있는 아기가 더 이상 뒤뚱대며 아파하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잡는 일은 나 또한 세상과 균형을 잡기위한 일이기도 하므로.


수필사랑 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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