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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금줄> 본문

푸른 노트

작가의 변 <금줄>

소금인형 2006. 11. 12. 18:27
 

작가의 변 <금줄>/ 이미경


수필은 내가 다가가기가 참 편한 상대였다. 반듯함이나 깍듯함이 적당히 없는 소탈한 친구 같아서 내가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처럼 푸근했다. 그냥 나의 느낌을 글로 옮겼다. 그러다보니 생각이 구체화되고 체계화되어서 좋았다. 수필을 사랑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편안하고 소탈하게 보이기는 이면에는 까다로운 틀과 고독이 있었음을.

수필의 문장은 간결 소박해야하고 논리성이 있어야한다. 평범하면서도 비범해야한다. 소재는 내 것이라도 주제는 나를 벗어나 일반화 객관화 되어 교훈과 감동을 주어야한다. 소재를 일상적인 사건에서 문학적 사건으로 승화시키라는 말인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수필의 소재 또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글이다 보니 나의 결함, 결점, 실패 좌절 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래서 수필가의 삶은 불편하고 고독할 수도 있다.

어디 고독한 것이 작가의 삶뿐이겠는가. 문명의 발달로 세상의 관심에서 점점 밀려나는 것들이 많아진다. 더 이상의 경쟁력이 없어서 방치되고 소외되는 것들이 가늘게 내지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금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걸린 좋은 소재였다. 이제는 백과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진부한 금줄이 왜 과학적인 증명만 믿는 현대인의 문 앞에 걸려있을까. 금줄은 현대인의 정체성이었다. 

문명의 발달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다.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 형태로 바뀌면서 개인주의 팽창을 가져왔다. 누구에게 관섭받기 싫어 혼자 있는 것 즐기면서도 현대인들은 외로운 것이다. 초대하지 않는 한 방문할 사람 없는 집에 금줄이 걸린 것은 번거로운 것은 싫지만 기쁨은 나누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였다. 부대끼며 정들어가는 투박함이 그리운 시절이다.

<금줄>을 쓰면서 먼저 생각한 것은 구성부분이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써내려 가자였다. 다만 너무 밋밋할 것 같아 금줄을 치기 전에 일어났던 반장아주머니와의 일은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 처리해 중간부분에 끼워 넣어 변화를 주었다. 허무할 만큼 쉽게 문은 열렸고’라는 표현부분은- 아는 사람이 방문하면 최소한 문을 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직까지 남은 우리네 정이다. 반장아주머니의 방문에 문조차 열지 않은 새댁과 금줄을 치며 아래층 남자가 내게 보인 반응으로 나는 그 집 대문이 정말 견고해보였다. 그래서 집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내가 망설이고 생각한 시간에 비해 빨리 열리는 문을 보며 내가 걱정한 것이 헛되고 보잘것없었구나 생각했었다.

글의 뒷부분에 ‘울음소리’와 ‘아기’란 낱말이 여러 번 사용되었다고 했는데 비문이 되지 않기 위한 부분도 있고 나와 아래층이 소통가능 했던 것은 아기의 울음이 매개체가 되었기에 의도적으로 쓴 부분도 있어서이다.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신 김명희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상으로 작가의 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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