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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공사 중

소금인형 2007. 6. 7. 00:16

 

 

 

공사 중 /이미경



굴착기가 지나갈 때마다 나무들이 드러누웠다. 옹이처럼 깊이 박혀있던 굵은 뿌리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놀란다. 수액을 토해내며 잔뿌리가 흔들린다. 느릿느릿 불도저가 지나간 땅위엔 신경세포 같은 뿌리들이 아우성이다. 어린나무 하나 집어 뿌리를 추스르니 힘없이 바스라진다. ‘정성들여 키우면 건강한 뿌리가 떨어져나간 뿌리의 몫까지 할 수 있을 거야’ 어머니의 신경세포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본다.

다른 날 같으면 어머니를 물리치료실에 모셔다 드리고 휴게실에 앉아 책을 보거나 TV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머니의 행동이 마음에 걸려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치료실에 앉아있기도 불편했다. 마땅하게 시선을 둘만한 곳이 없어서다. 팔 다리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자활치료를 바라보는 것도 민망해서 나는 병원 건너편 공사장으로 나왔다. “어머니가 병원에 오신지 얼마나 되었냐고요.”등 뒤에서 생소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목소리 톤이 높다. 마흔이나 되었을까. 유난히도 뽀얀 피부의 여자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가늘고 긴 목선을 타고 내려오는 그녀의 마비된 한쪽 팔이 마치 잘못 끼워진 인형 팔같이 뒤틀려있다. “미안해요. 잠시 딴 생각하느라 못 들었어요.” 나는 그늘 쪽으로 걸어가며 이십일 정도 되었다고 말한다.

“나도 처음에는 참 많이도 울었어요.” 그녀가 내 옆으로 걸어왔다.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는 뇌기능이 원활하지 않아 감정 조절이 어렵다. 그래서 가끔씩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곤 하시는데 오늘도 물리치료실 앞에서 치료받기 싫다며 갑자기 어린아이 같이 우셨다. 

“이 병은 환자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어요. 일종의 신경장애 같은 거죠.”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아련한 눈빛으로 먼 곳을 한 동안 바라보다 속내를 털어 놓았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던 그녀가 뇌출혈로 쓰러져 눈을 떴을 때는 반신불수의 몸이 되어 있더란다. 지금도 마비된 한쪽 시력 때문에 거리 판단이 되지 않아 혼자 걷는 게 두렵다한다. 보이는 대상은 모두 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처럼 흔들려 보이고 땅에 있는 작은 돌멩이도 높게 솟은 바위같이 보인단다. 병원 생활을 한 지가 이년이 지났다는 그녀는 내일 퇴원한다 했다. 완치되지 않을 장애를 가지고 퇴원한다는 여자의 얼굴 위로 어머니의 얼굴이 겹친다.

먹먹해지며 가슴이 답답해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고 있는데 그녀가 돌아서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지금 땅이 흔들리지 않는 거 맞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부축하려하자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혼자 걷기위해 길을 어림하는 중이라며.

치료실로 들어서니 마비된 곳에 전기 충격을 주어 치료 받는 사람도 있고 뻣뻣해진 팔다리를 주무르거나 걷는 연습을 하며 운동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다. 환자들은 한결같이 아픔을 하소연하며 찡그리고 주저앉으며 치료받지 않겠다고 떼도 쓴다.

멀리서 집게를 힘들게 뺏다 꼽았다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길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이라고,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는 것이라고 침묵으로 가르친 그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창밖을 내다보니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멀리 까지 간 것인가  속살을 내놓은 황토 위로 햇살이 내리찧는다. 초록이 잘려나간 땅위에는 아파트가 들어 설 것이다. 땅은 자기의 자양분을 끌어올려 생명을 직접 키우는 대신 생명들의 안온한 보금자리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공사 중이다.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뿌리 뽑히는 아픔을 겪은 땅 위에는 더 많은 생명을 보듬는 튼실한 건물이 세워질 것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방향을 잃어버리기라도 했나  잠시 방황하는 모습이다. 젊은 나이로 자신의 결함과 장애를 인정하기까지 그녀 또한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내야 했을까. 나무처럼 쓰러진 육신을 대패질하여 기둥으로 세우기까지 많은 날을 허우적거리다 돌아앉아 울기도 했을 것이다. 못질 소리에 가위 눌린 밤 가득하고 사다리를 헛디뎌 나뒹굴기도 했을 것이다. 소스라침으로 쌓은 벽돌 위에 미장을 하며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깊은 상처 속에서도 성숙의 틈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쓰러진 이후 우울했었다. 우울의 들판 위로 육중한 기계들이 굴러간다. 상념의 나무들이 잘려지고 불안의 수액이 흩어진다.

조금 있으면 나는 지금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실로 돌아갈 것이다. 뚝딱 뚝딱 망치소리와 경쾌한 톱질소리를 들으며. 지금은 공사 중이다.


수필사랑 1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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