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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주 본문

소금인형의 수필

작전주

소금인형 2012. 11. 1. 08:01

 

작전주 /이미경

 

 

 

한동네에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놀러 왔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컴퓨터로 주식거래를 한다. 주식을 사서 단기적으로 팔아 시세 차익을 보는데 수입이 짭짭하다고 했다. 한창 수입이 좋을 때에는 외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명품 가방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런 친구를 보며 나도 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귀차니즘이 있는 터여서, 종일 햇빛도 보지 못하고 컴퓨터와 씨름해야 한다는 사실에 생각을 접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돈맛을 몰라서 그런다며 쓴소리를 했었다. 그런 친구도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었다. 주식의 속성인 변동성을 어르고 달래며 자주 롤러코스트를 탔다. 친구의 삶을 그래프로 그리면 높고 험한 봉우리가 세 개로 그려지건만 여전히 주식을 버리지 않는다.

얼마 전 친구는 주식에 관한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다며 여윳돈이 있으면 투자하라고 넌지시 말했다. 은행 이자보다는 몇 곱절 불려 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내가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 말이기에 대답할 말이 딱히 없었다. 그때 조상신이 돌보기라도 한 듯 신문에 쓰인 글자가 확 내 눈에 들어왔다. ‘저평가된 우량주’, 나도 모르게 저평가된 우량주에 묻어두었다는 말로 빠져 나갔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의 얼굴을 보니 다크써클이 배꼽까지 내려와 있다. 무릎 나온 바지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작전주를 사서 낭패를 보았다고 했다.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다더니 작전 세력에 말려들었던 모양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주식거래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에게 곱게 눈을 흘겼다.

“넌 어째 작전주에는 그렇게도 약하냐?” 친구의 남편을 두고 한 말이었다.

커피를 마시던 친구가 풋 웃었다.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던 친구는 고객이었던 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남자였다. 남자는 많은 돈을 투자하진 않았다. 주식을 배우는 중이라며 친구에게 조언을 구한다며 다가왔다. 그녀가 남자에게 반한 건 잘 생긴 외모 탓도 있었지만, 목소리 때문이라고 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말이 아니라 배속같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서울말을 쓴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바람이 먹구름을 몰고 가듯이 기분이 환해진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후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남자는 가끔 우리 모임에 나와 밥값을 내 주기도 하고 영화관도 같이 갔다. 주말이면 자가용에 우리를 태우고 근교로 나들이도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다는 이유로 꽃이나 액세서리 같은 선물도 자주 받았다.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그 때문에 열렬했던 한 쌍이 비교를 당해 결별을 하기도 했다.

친구의 시작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두 사람이 살기에는 넓은 아파트에 신혼에 쓸 살림들을 채우기에 바빴다. 결혼식도 고급스러웠다. 턱시도를 입은 영화배우 같은 남편 옆에 서울에서 바로 가져왔다는 드레스를 입은 친구는 엄지공주 같았다. 결혼식 내내 엄지공주의 입 모양이 상현달인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워했다.

친구는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둘 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꿈이 화가였다면서 그림공부를 할 거라고 했다. 이상적인 만남이란 서로의 꿈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관계라 막연하게 생각한 나였기에 그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때는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였다.

 

손가락에 묻은 물방울을 탁탁 튕기며 살 것 같았던 친구는 회사를 계속 다녔다. 증시가 상한가를 치던 시절이라 회사를 그만두기가 아까울 거로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녀의 살림살이는 변화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전세를 살다 집을 사고, 평수를 늘려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살림살이는 그대로였다. 내 허리에 슬금슬금 군살이 붙는 동안 그녀 얼굴에는 기미가 짙어갔다.

하루는 친구가 와서 제 발등 제가 찍었다며 눈물 콧물을 뺐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말리더란다. 자가용도 집도 심지어 결혼비용도 다 빚이라고 했다. 빚이란 것이 자신에게 갖다 주느라 진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했다. 작전주에 말려들어도 지독하게 말려든 것 같다며 펑펑 울었다.

얼마 후 친구는 구조조정으로 명퇴했다. 퇴직금 중 일부는 자신의 비자금이라며 나에게 맡겨 놓고 나머지 돈은 남편의 사업 자금으로 주었다. 잘생기고 정 많은 친구의 남편은 사업에 소질은 없었다. 다시 조그만 기업체에 취직했고 친구는 나에게 맡겨 놓았던 돈으로 주식거래를 시작했다. 한동안은 웬만한 봉급생활자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그러다가 몇 년간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더니 결국 지금까지 빚을 안고 있다. 높은 산을 몇 번 넘은 사람에겐 낮은 산은 언덕쯤으로 보이나 보다. 친구는 삶이 조금 힘들지만 견딜만하다고 했다. 세상에는 폭력남편, 바람피우는 남편도 있는데 자신의 남편은 잘하고 싶은데 운이 따라주지 않는 착한 남편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살아 움직이는 작전주 인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그럴듯한 말로 달콤하게 속삭인다. 때로는 가짜가 진짜인 척 유혹하기도 한다. 작전주들이 유령처럼 떠다니는 어수선한 공간에서 울고 웃으며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이다.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보던 친구가 말한다. “넌 참 복도 많다.” 여전히 파도 타는 삶을 살아야하는 친구로서는 권태로울 만큼 잔잔히 사는 내 모습이 부러운 모양이다.

“넌 이게 단순히 복으로만 보이니. 이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공에다가 작전주를 피하는 방법을 피땀 나게 연구한 내 노력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지”

나는 웃으며 농담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친구가 곱게 눈을 흘기며 말한다.

‘뻥치고 있네.’

 

 

문장 2013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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