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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인형의 수필

시소

소금인형 2013. 8. 28. 22:49

시소 / 이미경

 

 

삐거덕, 삐거덕’ 소리에 잠이 깼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안 풍경은 그대로였다. 곤히 자는 남편을 보다가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아들 방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들리듯 말 듯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내가 꿈을 꿨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물 한 컵으로 마른 목을 축였다. 잠이 확 달아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였다. 그때 어디선가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부부싸움을 하는지 울면서 말하는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남자의 고함이 팽팽했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을 요량으로 큰 방 화장실로 향했다. 윗집에서 나는 소리가 가장 장 들리는 곳은 방 화장실이고, 옆집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곳은 아들 방이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위층이었다.

며칠 전 벨 소리에 문을 여니 처음 보는 여자가 떡을 들고 있었다. 바비인형 몸매의 앳된 여자였다. 위층으로 이사 온 사람이라며 무지개떡을 내밀었다. 요즘은 이사 떡을 돌리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젊은 새댁이 떡을 돌리는 것이 예뻐서 귤 몇 개를 들려 보냈다. 음식을 나눈 정이 있어서인지 한밤중 나의 단잠을 깨웠다는 사실보다도 우는 새댁이 마음에 걸렸다.

결혼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무슨 일이었는지 몰라도 우리 부부는 말다툼을 했다.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 팽팽히 신경 줄을 건드리며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어느 순간 남편의 손이 나의 뺨을 스쳐 갔다. 때렸다기보다는 손으로 밀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남편의 손찌검이나 바람은 초장에 확실하게 해 놓지 않으면 평생을 가슴앓이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큰 소리로 울었다. 울다 보니 서러움이 복받쳐 친정 식구가 그리웠다. 친정에 전화를 하고 말았다.

한밤중에 달려온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울면서 한 말이라 무슨 말인지 모르고 달려왔다고 남편에게 말을 했다. 술 취한 송 서방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줄 알고 달려왔다는 재치를 발휘하셨다. 그리고는 시간이 늦었으니 자고 갈 거라며 나에게 이불을 펴라고 하셨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세 사람이 나란히 누웠지만, 누구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옥탑방 위로 부는 바람 소리만 크게 들렸다. 세 사람 다 몸을 뒤척이다 숨소리를 고르게 먼저 낸 사람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버지지가 잠든 척 하시는 것임을…….

남편이 출근한 후 아버지는 싸우지 말고 살라는 당부를 하셨다. 부부라는 것이 한 공간에서 움직이다 보니 부딪치기도 하고 심정이 다치기도 하는 거라며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라고 하셨다. 당부의 말씀을 하시는 내내 맘이 편안하지 않으신지 종이로 뭔가를 접으셨다. 시소였다. 아버지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손으로 뭔가를 만드셨다. 종이로 학이나 배를 접거나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못을 박고 사포를 문지르셨다. 그러면서 마음을 달래고 정리하셨다. 그래서 그때는 아버지가 접은 시소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신혼 때 아내를 확실하게 길들여 놓지 않으면 평생 괴롭다는 선배의 말이 생각나서 과잉반응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당부를 생각하며 내가 먼저 미안하다는 말로 우리는 훈훈한 마무리를 지었다. 그때 잠깐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리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슬프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신혼 시절 아버지께서 종이 시소를 접을 때의 마음이 내가 지금 새댁에게 바라는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가장 든든했던 아버지의 그늘은 이미 없어졌지만, 그 세월을 사는 동안 시소 놀이의 규칙을 깨달아 갔다. 시소는 혼자서는 탈 수가 없는 기구다. 서로 마주 보며 오르락내리락하며 타는 놀이기구이다. 팽팽히 힘겨루기 하듯 오르거니 내리거니 하는 리듬이 없으면 곧 그만두기 일쑤인 게임이다. 시소의 균형은 평행선이 아니라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은 내려가는 게 균형이다. 부부가 함께 사는 일도 시소게임과 같다. 한쪽이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이면 다른 한쪽은 한걸음 물러서서 목소리를 낮추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새댁의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부부의 사랑은 좀 다른 것 같다. 가정이라는 축을 두고 시소처럼 마주 보고 앉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랑이다.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듯이 새댁의 부부싸움도 심각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쓸데없는 걱정인 줄 모르겠으나 요즘 부부들이 순간의 감정 조절을 못 해 극단적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심심하지 않게 들은 탓이다. 부부간의 싸움은 그저 부부간의 놀이로 여기고 가볍게 지나갔으면 싶다.

잠 안 자고 화장실에서 뭐하냐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도 이미 깨어있었나 보았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잠이 들지 않으니 신경이 곤두서있는 것 같았다. 슬며시 남편 곁에 누우며 위층 새댁이 싸우는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이 돌아누우며 한마디 했다.

“교양 없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금 들은 것을 가지고 교양을 운운하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목구멍 까지 나오는 감정의 대답을 삼키며 내가 탄 시소를 사뿐히 땅으로 내린다. 그리고는 다시 땅을 딛고 시소를 하늘 높이 올릴 궁리를 한다.  

2013년 대구수필가협회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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