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나이 본문
모처럼 늦밤을 잤다. 남편은 외국 출장 중이고 아이들은 방학이라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 오늘 약속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친구와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시계가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후다닥 세수하고 옷 대충 걸치고 지하철을 탔다. 행여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까하여 핸드폰 시계를 보니 8:55 라고 쓰여 있다. 내가 시계를 잘못 본 것이다. 약속 장소가 학교 앞이었다는 게 다행이면 다행이었다. 천천히 학교를 산책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주로 다녔던 인문관과 중앙 도서관을 한 바퀴 돌았다. 방학이어서 그런지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자판 커피를 마시며 언니에게 문자를 넣었다. ‘ 시계를 1시간 잘못 보고 약소 장소로 나와서 시간 때우고 있음. 치매도 아니고 왜 시계를 잘못 봤는지 모를 것네.’ 딩동 언니에게서 답이 왔다. ‘요즘은 늙으나 젊으나 다 그렇더라 걱정마라’ 실없는 문자 몇을 통 주고받고 다시 학교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가방에 책이라도 한권 있으면 좋으련만 급하게 나오너라 그 마저도 없다. 학교 캠퍼스를 다시 걷다가 나무 벤치에 앉아 핸드폰으로 셀카놀이를 했다. 혼자 놀기에 이만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이쁜 표정 , 슬픈표정, 귀여운 표정, 손v하고 찍기, 왼쪽 찍기, 오른쪽 찍기,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졌다. 날씨도 포근한 것이 조명도 잘 받쳐주었다. 갑자기 이상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멀리서 한 남학생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을까?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생각해도 쉰 넘은 아주머니에게는 안 어울리는 짓이었다. 육체의 늙는 속도를 못 따라가는 내 마음이 슬프고 부끄러워 허둥지둥 약속 장소로 도망치듯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