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소금인형 수필2 (26)
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식이 있어 좀 늦을 거라 했다. 요즘 들어 흰 머리카락이 부쩍 눈에 거슬려 뽑아 달라고 할 참이었던 터라 힘이 빠졌다. 하는 수 없이 탁자 위에 동그란 거울을 세워놓고 족집게로 흰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흰 머리카락이 정수리 부분에 소복했..
봄의 길목을 돌다 / 이미경 참으로 오랜만에 봄을 앓는다. 온몸으로 퍼지는 한기를 느끼며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덮는다. 그러다 문득 교회가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멈춘다. 가끔씩 시리도록 그리운 그곳이다. 창밖에는 봄눈이 온 도시를 덮었다. 그리고 찬바람이 며칠째 불고 있다. 문병 ..
나무의자/이미경 아픈 몸을 한 늙은 신을 보는 것 같아 애잔하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평화로운 숲에서 고목이 될 줄 알았는데, 우리 집과 인연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다 떠나는걸 보니. 고대광실 대들보나 조용한 암자의 기둥이라도 되었으면 부초처럼 살진 않았을 텐데, 한평생 누군가..
/이미경 따프롬 사원의 나무가 떠올랐다. 건물을 배경으로 다소곳이 서있는 풍경이 아니라 사암벽돌 건물 틈새에 뿌리를 내리며 건물과 뒤엉킨 나무였다. 크메르 전쟁 후 사원이 밀림에 방치되면서 새들의 배설물에 의해 나무의 씨앗이 성곽의 돌 틈 곳곳에 떨어져 뿌리가 돌연변..
혼신지/ 이미경 청도는 길이 아름답다. 복사꽃 초롱에서 진홍빛 감들이 전등처럼 이어져 있는 맑(淸)은 길(道)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굽이진 길 위를 가노라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 같아 괜히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멀리 보이는 산안개와 이름 모를 꽃들, 허물어진 돌담과 빛바래어가는 풍경이 섬..
다섯 잎 클로버/이미경 파블로의 개에게 빙의된 것도 아니건만 클로버만 보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친구를 따라 나선 산책길, 비포장 둑 위로 자동차 한대가 지나간다. 화들짝 놀란 먼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둑 아래로 가볍게 흩어졌다. 둑 아래를 걷던 친구와 나는 고개를 숙이며 손..
공간나누기/이미경 지하철을 타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자리를 찾았다.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나는 아무도 없는 구석자리로 가서 쓰러지듯 앉았다. 평소에는 앉지 않는 지하철의 구석자리는 아픈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좋은 곳이리라. 뼈마디가 쑤시는 팔을 손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