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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폭설 - 오탁번 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
꽃 풍장 / 이미경 울고 있을 것이다. 누룩처럼 부풀어 오르는 슬픔에 엎드려 울고 있을 동생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자신이 없어 기다리던 나는 두어 시간째 절 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굵고 녹슨 못에 긁힌 듯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아프지만 놓을 수 없는 상처(傷處), 그..
熱河를 향하여 1 이기철 趾源은 하룻밤에 아홉의 강을 건너 거친 모래 땅 열하에 도달했다지만 나는 아홉 밤을 불면으로 지새워도 한 개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마음 덮으면 없는 강이 마음 밝히면 열의 강으로 소리를 높인다 숱 많은 머리카락 날리며 바람은 어디로 불어 가는가 메마른 계절일수록 마..
화엄동백 김영재 뚝뚝 목이 지는 화엄사 동백을 만나 일자리 작파하고 유랑하는 친구의 말씀 지리산 반야봉 너머 환한 세상 있겄다 천왕봉 상상봉에 매어놓은 <바람집 한 채> 바람을 부르면 슬픈 가락이 되고 구름 몰려오면 벼락치는 노한 소나기로 우르릉 쾅쾅, 섬진강 은어떼 뛰듯 철없이 튀어..
불가에서는 모든 관계를 인연설과 인과설로 설명한다. 몇 생이 흐른 지금 남명학문을 연구하는 선생님들은 전생에 남명과는 어떤 연으로 닿아있었을까? 그리고 우연히 합류하게 된 나는 그들과 어떤 관계였을까? 88고속도로를 달리며 잠시 생각에 젖는다. 해마다 여름휴가를 다녀왔건만 올해는 피치 ..
소포 / 이성선 가을날 오후의 아름다운 햇살 아래 노란 들국화 몇 송이 한지에 정성들여 싸서 비밀히 당신에게 보내드립니다 이것이 비밀인 이유는 그 향기며 꽃을 하늘이 피우셨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와서 눈을 띄우고 차가운 새벽 입술 위에 여린 이슬의 자취 없이 마른 시간들이 쌓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