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소금인형의 수필 (61)
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한파 /이미경 혹한이 찾아왔다. 이월의 느닷없는 추위는 모든 것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한파가 몰고 온 눈보라에 비닐하우스와 축사는 무너지고 길들도 지워졌다. 초등학교는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나도 동장군의 기세에 눌린 것인지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이런 날은 꼼짝하기가 싫다. ..
고부.hwp 고부 / 이미경 남편에게는 자랑처럼 생색내는 것이 하나있다. 남들은 몇 년에 한번 갈까 말까한 제주도를 만사 제처 놓고 일 년에 두세 번씩은 데리고 가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집 하나는 잘 온 게 분명하다는 뒷말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본댁이 제주인데 그렇게 ..
握-쥘악 유폐 / 이미경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데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삶이 바쁘다며 자주 연락을 하지도 않던 친구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거니 하며 지내다 보니 친구의 안부가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친구는 뜻..
북어 /이미경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서 깼다. 책을 읽다 잠깐 잠이 든 모양이었다. 라디오에서 ‘명태’가 흐르고 있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지하 음악실에서 100번도 넘게 반복적으로 들었던 노래, 그 노랫소리였다. 중학교 1학년 음악 시간에 늘 클래식을 들었다. 수업종료 20분 ..
신의 물방울 /이미경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알코올이 잘 해독되지 않는 체질 탓이다. 냄새만 맡아도 어지럽다. 어쩌다 한 모금 마신 날은 혼자 다 마신 것처럼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가 되어 같이 있던 사람들 보기가 민망해진다. 뿐만 아니라 가슴도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프며 ..
구토 /이미경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속이 편하지 않았다. 잔잔하던 속이 물수제비 같은 파문을 일으키더니 금방이라도 멀미를 할 것처럼 아우성을 쳤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끝까지 말하지 못함을 원망하듯 뱃속에서 요동을 쳤다. 엄마들이 모인 곳은 조그만 식당이었다. 학부모..
화양연화 / 이미경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젊고 건강했던 육체에서부터 올곧았던 정신까지도 시간 앞에서는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시간의 횡포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우울의 강을 서성이고 있는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