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소금인형의 수필 (61)
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꽃 풍장 / 이미경 울고 있을 것이다. 누룩처럼 부풀어 오르는 슬픔에 엎드려 울고 있을 동생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자신이 없어 기다리던 나는 두어 시간째 절 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굵고 녹슨 못에 긁힌 듯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아프지만 놓을 수 없는 상처(傷處), 그..
닿지않는 소리 / 이미경 배관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안방에 딸린 화장실 문을 열었다. 누렇게 얼룩졌던 천장이 말끔하다. 산뜻하게 도배된 초록의 잔잔한 벽지를 보니 지난 시간들이 마치 어지러운 꿈을 꾼 것만 같다. 그날, 나는 이를 닦고 있었다. 위층에..
나는 집으로 간다 / 이미경 은은한 불빛이 좋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도 마음에 든다. 나는 갤러리를 느릿느릿 걸으며 그림들을 둘러보다 걸음을 멈추었다. 몇 개의 검은 반원과 하얀 사각형위로 푸른 물감이 덧칠 된 그림 앞이었다. 흐릿하지만 그것은 분명 집의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눈물 가득 고..
목화 /이미경 현관을 나서는데 경비원이 졸고 있다. 오던 날부터 졸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아예 머리를 의자 뒤에 기대어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나는 짐짓 모른척하며 문을 나와 수돗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비실 벽과 아파트 벽이 ㄱ자로 이어진 어두운 곳에 꽃이 피어 있다. 누에고치 ..
공사 중 /이미경 굴착기가 지나갈 때마다 나무들이 드러누웠다. 옹이처럼 깊이 박혀있던 굵은 뿌리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놀란다. 수액을 토해내며 잔뿌리가 흔들린다. 느릿느릿 불도저가 지나간 땅위엔 신경세포 같은 뿌리들이 아우성이다. 어린나무 하나 집어 뿌리를 추스르니 힘없이 바스라진다. ..
갈등 이미경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가을 햇살이 가득하다. 태나서 죽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일은 가을볕 마냥 억겁 속에 되풀이되어온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마흔도 안 된 그녀의 부고는 뜻밖의 일이다. 남편은 내 신앙생활의 시작을 못마땅해 했다. 친척 아주머니의 광신적 ..
금줄 /이미경 남자는 금줄을 치고 있었다. ‘happy’라고 쓰인 리스를 현관문에서 떼어내더니 금줄을 비끄러매었다. 금줄이 어색해 보였다. 도시의 고층아파트에 매여 있어서가 아니라 집주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풍경 같아서이다. 그 집에는 서울 말씨를 쓰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 워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