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558)
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북어 /이미경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서 깼다. 책을 읽다 잠깐 잠이 든 모양이었다. 라디오에서 ‘명태’가 흐르고 있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지하 음악실에서 100번도 넘게 반복적으로 들었던 노래, 그 노랫소리였다. 중학교 1학년 음악 시간에 늘 클래식을 들었다. 수업종료 20분 ..
신의 물방울 /이미경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알코올이 잘 해독되지 않는 체질 탓이다. 냄새만 맡아도 어지럽다. 어쩌다 한 모금 마신 날은 혼자 다 마신 것처럼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가 되어 같이 있던 사람들 보기가 민망해진다. 뿐만 아니라 가슴도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프며 ..
구토 /이미경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속이 편하지 않았다. 잔잔하던 속이 물수제비 같은 파문을 일으키더니 금방이라도 멀미를 할 것처럼 아우성을 쳤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끝까지 말하지 못함을 원망하듯 뱃속에서 요동을 쳤다. 엄마들이 모인 곳은 조그만 식당이었다. 학부모..
화양연화 / 이미경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젊고 건강했던 육체에서부터 올곧았던 정신까지도 시간 앞에서는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시간의 횡포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우울의 강을 서성이고 있는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
천생연분 / 이미경 모를 일이다. 좌회전 우회전을 외치며 부지런히 왔는데 또 길이 미로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목적지 주변을 몇 번 돌아야 할 것 같은 예감에 조수석에 앉은 나는 슬슬 불안해진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는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오는 내내 길은 체한 것만큼 답답..
요지경 /이미경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리분별 할 줄 알던 내가 뭔가에 홀린 듯 허방다리를 종종 짚는다.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늘 있는 일이었다. 친구는 문자로 좋은 글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요리 레시피를 보내주는데 작은 도움이 되곤 했다. 기분이 가라앉은 날..
줄자/이미경 샤방한 옷들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재빠르게 훑어보고는 마음에 드는 원피스에 마우스를 갖다 대었다. 오른쪽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바뀌면서 옷의 치수가 보인다. 팔 길이를 재기 위해 줄자가 필요한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달팽이처럼 몸을 감은 줄자를 찾은 건 둘째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