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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미경의 블로그 입니다
메주 문을 열자 쿰쿰한 냄새가 확 밀려왔다. 방에는 양파 망에 담긴 메주들로 가득했다. 발효의 시간을 거쳐 온 거뭇거뭇한 곰팡이와 흰곰팡이가 놀란 듯 바람에 날렸다. 주인은 맘에 드는 메주를 골라 가라한다. 요즘 사람들은 푹 숙성된 메주를 좋아하지 않지만 곰팡이가 많이 핀 메주..
봄 같은 날씨다. 남편의 명퇴로 대추밭을 샀다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우리는 과수원 한쪽에 숯불을 피워 삼겹살을 구웠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의 장난에 따라 연기를 피해 고기를 먹느라 요리조리 옮겨 다녀야 했다. 며칠 가지치기로 몸살이 나서 병원에 갔다 온 친구의 남편 몇 달 안 ..
고인돌 예전에는 아파트의 조경인줄 알고 그냥 스쳐지나 갔던 길이다. 그런데 그곳이 고인돌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부터는 굳이 돌아서라도 그 길로 다닌다. 어떤 날은 한참동안 그 곳에 서서 멍하니 쳐다보기도 한다. 내 주위의 모든 것 무채색으로 돌고 있다가 내 눈길이 닿는 순간 원..
모처럼 늦밤을 잤다. 남편은 외국 출장 중이고 아이들은 방학이라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 오늘 약속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친구와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시계가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후다닥 세수하고 옷 대충 걸치고 지하철을 탔다. 행여 약..
향수 땡 소리와 함께 승강기 문이 열렸다. 처음 보는 중년의 신사 한 분이 내렸다. 요 며칠 이사 가고 들어오는 집이 많더니 그중 한집 사람인 모양이었다. 승강기를 타니 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집까지 올라오는 내내 머리가 찌근거렸다. 우리 아파트에서 가끔 여성들이 짙은 향수..
가슴에 상처가 생기던 날 세상은 도는 것이 아니고 흐르는 것을 알았다. 강물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흘렀다, 도로 위에는 차들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사람들이 흘러갔다. 모든 것은 흘러가지만 내 마음의 상처는 흐르지 못한 채 거기 그대로였다.
아버지의 아파트 차례를 지내고 아버지가 계신 추모 공원에 갔다. 아버지를 이곳으로 모셨을 때는 빈 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명절날 도로 위의 차들처럼 유택이 꽉 차 있다. 사람 좋아했던 아버지는 이웃이 많이 생겨 싱글벙글하고 계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통도사 매화를 보러 갔다. 소문..